오늘도 그 할머니다. 지팡이 대신 잘 접은 우산에 잔뜩 굽은 허리를 지탱하여 아주 느린 걸음으로 성대시장 사거리를 오른다. 빠르게 지나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는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매서운 날씨에 어서 몸을 편안하게 해줄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는 행인들 틈으로 오늘도 땅만 쳐다보며 걷는 그녀를 만난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어디를 매일 그렇게 다녀오세요. 사랑했던 나의 할머니도 등이 굽었었다. 다정하고 웃음 많고 연속극을 좋아하셨던 그분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러 불편한 몸으로 서울이며 지방을 자주 오고 가곤 하셨다. 외국에서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도 미처 가지 못한 채, 뒤늦게 찾아간 납골당에서 할머니의 안경과 틀니, 그리고 처음으로 할머니의 이름을 보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할머니는 언제나 할머니였다. 사랑했다고 말하면서도, 그 이름이 가지는 총체적인 삶은 알려고 해보지 않았다. 누군가를 전부 이해하려는 것은 기만일지도 모르나 한 사람이라는 종료된 역사 앞에선 어떤 기만이어도 부족했다. 더 물을 수 없는 시간들과, 할머니라는 큰 세계를 상실한 나,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를 상실한 세계만이 남았다.
그래서 묻는다, 모두들 어떻게 사세요. 어떤 이야기를 갖고 계세요. 더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당신이라는 역사를 말해주세요. 역사는 홀로 완성되지 않으므로,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교차되고 교환되며, 서로를 쓰고, 지속시킨다. 우리 모두는 기록자이며 스스로 그렇게 기록 그 자체이다.
상도동이라는 물리적이고 행정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상도동 그소설>은 기실 상도동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유입되었다가 흘러나가고, 그 안에서의 만남과 갈등이 어제와 다름없이 등장했다가 해가 뜨면 다시 화해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 보편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개별의 공간과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특수한 이야기들의 콜라주이기도 하다. 상도동이라는, 도시 서울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풍경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장소. 어느 때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일말의 안전함을 가져볼 수 있는 동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늘을 보내는 사람들의 작은 서사는 상도동을 이루는 일부이자 상도동이라는 전체이다. 소설 혹은 에세이라는 자전적 기술의 형태를 통해 기록된 개인사는 그래서 상도동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의 소중한 재료이자 방법이다. 창작이라는 틀 안에서 허용되는 숨기와 드러내기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 상도동의 모습이 풍부하게 묘사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자유로이 신청을 통해 모집된 열 명의 동네 작가는 그렇게 누군가의 상도동이면서 모두의 상도동을 완성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시선과 감정이 저마다의 해석을 통해 발화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 언어가 사람들에게 다채롭게 독해되어 또다시 미완의 상도동으로 재조립되는 과정 또한, 이 한 권의 책이 담고자 하는 의미이다.
절기 소설(小雪)의 사전적 정의처럼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겨울 기분이 들면서도 따사로운 햇살’이 있는, 그래서 겨울에 몸을 두고 봄을 회상하거나 혹은 봄을 환기할 수 있는 겨울의 시간으로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상도동이 풍부하게 경험되고 회자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