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정거장


2014년, 블랭크에서 만화카페 <즐거운작당>을 설계할 당시, 우리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습니다. ‘굴방’이라는 독특한 공간과 다락방, 계단식 테라스, 전면을 가득 채운 책장 등 기존 만화방의 통념을 깨는 공간으로 오픈 직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즐거운작당 스타일’의 만화카페들을 보며 우리는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즐거운 작당>의 클라이언트 역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만화’라는 문화가 하나의 유행으로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작은 꿈에서 시작해, 현재는 그림책방 <달달한 작당>을 함께 운영하며 꿈을 이어가고 계시고, 오픈 이후 들어온 수많은 프랜차이즈 문의를 거절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흐름은 문화보다 늘 앞에 있었고, ‘좌식형 만화카페’는 만화를 소비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만화책을 유통하며 만화방 창업을 도와주는 한 업체는 마치 자신들이 직접 설계한 공간처럼 포장하여 홍보하기도 하였고, 저희에게 설계를 의뢰했던 한 업체는 기획설계 도중에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컨셉의 만화카페를 오픈하였습니다. 심지어 모 업체에서는 재료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베낀 디자인으로 특허까지 신청해 무서운 속도로 확장 중에 있고, 최근에는 대기업까지 만화방 시장에 뛰어들며 과열 양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저희는 그동안 만화카페에 대한 설계를 의뢰받을 때마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즐거운작당>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툰하우스>나 <청춘문화싸롱> 역시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달빛정거장> 또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 상에서 ‘만화책’이라는 콘텐츠가 어떻게 보편적인 문화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더 다양하게 경험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시작하였습니다. <달빛정거장> 은 이렇듯 ‘만화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블랭크의 네 번째 시도였습니다.


이제까지 ‘카툰매니아’란 이름으로 오랜 기간 만화방을 운영해 온 클라이언트는, 기존 만화카페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달빛정거장>만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만화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클라이언트의 취지에 맞게, 블랭크 또한 새로운 형식의 만화카페를 기획하는 데 의의를 두었습니다. 그렇기에 초기 기획 단계부터 세밀한 브랜딩과 공간설계를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총면적은 258.93㎡(약 80평)로 작지 않은 규모의 만화카페 프로젝트입니다. 공간개념은 내부에 중정과 같은 열린 공유 공간을 둠으로써, 각각 다른 기능으로 존재할 수 있는 좌석 전체가 열린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클라이언트의 전시 및 소규모 공연에 대한 열망 또한 ‘만화카페’라는 정체성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달빛정거장>만의 새로운 색깔을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도록 계획하였습니다.

<달빛정거장>은 크게 책장 공간, 카운터 및 주방공간, 중정형/스탠드형/복층형/가림형 좌석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장 공간은 3만 권이 넘는 만화책을, 2단이나 3단의 슬라이드형 책장을 사용하지 않고 진열하고자 하였습니다. 기존에는 공간 사면의 모든 벽을 슬라이드형 책장을 사용하여 진열해 두었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하였습니다. 블랭크는 한 면만 책장 공간으로 두되, 벽 책장 사이사이에 75도 경사도를 준 책장을 제작하였습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좌우 측에서 보았을 때, 11개의 사선형 책장은 빼곡히 진열된 만화책만큼이나 인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카운터 및 주방공간은 홀과 함께 처음에는 보다 넓게 계획하였으나, 공간 내 좌석수를 고려하여 타이트하게 계획되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으며, 간단한 음료 및 과자를 살 수 있습니다. 만화책 신간을 위한 낮은 책장과 함께 만화책을 즐기러 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공간입니다.


중정형 좌석 공간은 넓은 면을 두어, 편안하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연출하였습니다. 다른 공간의 바닥과는 다르게 10cm 턱을 두고 녹색 카펫타일을 사용, 또한 천장에는 목재 루버를 설치하여 달빛정거장에서 중정공간만이 갖는 느낌을 계획하였습니다. 한편, 중정공간의 눈높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가 가능하도록 메쉬망으로 전시벽의 형태를 만들었으며, 공간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계획하였습니다. 이렇듯 오로지 폐쇄된 시선이 아니라 적당히 교차하는 시선을 만들어 부담 없는 개방감을 조성하였습니다.


스탠드형 좌석 공간은 중정공간과 함께 달빛정거장이 열린 공간으로 읽히도록 합니다. 복층형 좌석과 동일한 일반 합판으로 제작하여 공간의 통일감을 주었으며, 패브릭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여 안정된 느낌을 유도하였습니다. 팔걸이 및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용도로 제작한 소형 테이블은 패브릭 쿠션과 함께 따뜻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충분한 폭을 확보해 둔 스탠드 앞부분은 현재 2인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가까운 미래에 소규모 재즈 공연으로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복층형 및 가림형 좌석 공간은 1인 혹은 2-3인의 인원이 조용히 ‘만화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통행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닿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이렇듯 각각 다른 좌석 및 공간의 구성 요소들은 <달빛정거장>이란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블랭크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화카페’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달빛정거장>이란 공간을 만나 ‘만화책’을 보다 다양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또한 ‘만화책’이 매개가 되어 기존 프랜차이즈와는 다른 색깔 있는 이야기들이 이 공간에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기획 및 설계 : 손희경 김지연
감리 : 김지연
브랜딩 : 함수현 김지연
공사 : 페이퍼플랜


사전기획 : 2017년 1월 16일~2월 12일
실시설계 : 2017년 2월 13일~3월 19일
시공감리 : 2017년 3월 20일~5월 3일


규모 : 258m² (약 78평)

공사비 : 16,000만원

설계/감리비 : 1,800만원

브랜딩비  : 400만원


위치: 서울특별시 백제고분로 7길 8 지하1층